불경스러운 우스갯소리 하나.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창안해낸 물건을 선보이는 어느 박람회에 기발한 기계 하나가 출품됐다. 이른바 ‘배우자 자동판매기’다. 돈을 넣고 자기가 원하는 이성을 고르면 며칠 뒤 그를 만나 파트너로 삼을 수 있는 장치였다. 결혼하고 싶어도 마음에 드는 상대를 찾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세태에 맞춰 어느 결혼중매업체에서 개발한 것이다. 그런데 당연히 우승을 차지하리라 예상된 이 자동판매기는 준우승에 머물렀다. 그러면 무엇이 우승을 차지했을까? 배우자를 집어넣으면 현금이 나오는 ‘반납기’였단다. 
 
   
 

우즈의 위자료, 돈으로 환산한 사랑?

전혀 허황된 발상은 아니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의 불륜 사건에서 꼬리를 무는 상대 여성들의 폭로와 함께 세간의 관심을 끈 것은 그의 부인 엘린이 이혼을 할 경우 받을 위자료 액수였다. 우즈 부부가 이혼시 재산 분배에 관해 2004년에 미리 정해놓은 ‘혼전계약서’에 따르면 엘린은 2천만달러(약 240억원)를 받기로 돼 있는데, 어떤 보도를 보면 실제로는 4억달러(약 4800억원) 이상을 챙길 수도 있다고 한다. 배우자를 반납하고 거액을 받는 셈이다. 그녀는 배신을 당한 피해자지만, 많은 사람들의 경제적 질투심을 유발하기에 충분하다. 신파극의 고전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를 개작한 <사랑에 속고 돈에 웃고>라는 작품이라도 나올 법하다.


사랑과 돈은 어떤 관계인가? 나에게 호감을 보이고 접근한 이성이 알고 보니 내 재산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음을 안다면 크게 실망할 것이다. 이른바 ‘조건’을 떠나서 ‘나’라는 사람 자체에 관심과 호의를 가질 때 나도 가슴을 열 수 있다. 순수한 사랑과 금전적 욕망은 거리가 먼 것으로 생각된다. 둘 사이에 마음만 통하면 물질의 빈곤함은 물론 다른 난관- 예를 들어 신체장애, 부모의 반대, 학력 격차 등- 도 넉넉히 극복할 수 있다고 믿고 싶다. 아니, 실제로 사랑의 위대한 힘을 발휘하면서 감동을 자아내는 러브스토리도 많이 있다.

그러나 그런 순애보는 점점 희미한 그림자로 뒷걸음질치는 듯하다. <한겨레21> 772호(2009년 8월10일치) 표지이야기는 ‘사랑은 88만원보다 비싸다’라는 제목으로 가난한 청춘들의 힘겨운 연애 풍속도를 다루고 있다. 지하철 ‘알바’를 하면서 연하의 남자친구를 사귀게 된 어느 여성은 잦은 통화로 휴대전화 요금이 3만원 더 늘어나자 “누나, 동생으로 남기로 하자”며 사실상 이별을 통보해야 했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등록금을 대繡騁柰� 그 이후에 집안 사정이 더 어려워지면서 하루 종일 알바를 뛰어야 하는 그에게 사랑은 사치였다. 그와 비슷한 처지의 다른 여성은 데이트하는 시간조차 시간당 2천~3천원이라는 알바 비용으로 환산하는 버릇이 있는데, 애인을 만나면서도 지금 자신이 이러고 있을 때인가 하면서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해 미안했다고 한다.

 

 


 

남성의 경우 경제적 압박은 더욱 심하다. 여성의 데이트 비용 분담이 일반화되는 추세이긴 하지만, 아직도 남성이 조금 더 내는 것을 당연시하는 분위기가 있다. 강의실에서 만난 어느 남학생의 경험담이다. 친구가 소개해준 여학생이 마음에 들어 고급 레스토랑에 데려가 맛있는 것을 대접했다. 그런데 아뿔싸, 계산할 때 직불카드의 잔액이 부족한 것이 밝혀져 상대방이 모두 지불해야 했다. 체면이 손상되었다는 자괴감에 다시는 연락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만일 여학생이 그런 일을 당했다면 상대적으로 자존심이 덜 상했으리라 짐작된다. 경제력이 곧 능력이라는 등식이 아직까지는 남성에게 더욱 선명하게 적용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남자는 소개받은 상대가 마음에 들 경우 환심을 사려고 외제차 판매장에 데려가 여러 모델을 살펴보면서 가격을 묻곤 한다고 한다. 자신의 구매력을 과시 또는 과장하기 위한 술책이다. 물론 그것은 일부 젊은이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이지만, 연인 관계를 맺을 때 상대의 (특히 남성의) 경제력은 점점 중요한 매력 포인트가 되어가는 것이 일반적 추세다. 1980년대에 유행한 변진섭의 노래 <희망 사항>에 나오는 ‘내가 돈이 없을 때에도 마음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여자’는 정말로 희망 사항일 뿐이다.


가장 중요한 결혼 조건이 된 상대방 연봉

파트너 선택에서 돈이 점점 중요해지는 것은 연애에 들어가는 비용 때문만은 아니다. 함께 가정을 꾸려갈 배우자감으로 상대를 고를 때 재력은 점점 더 절대적 기준으로 부각된다. 그래서 이제는 여성이 이성을 소개받을 때 상대방의 연봉을 사전에 확인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대체로 얼마 정도를 기대할까? 결혼정보업체 ‘듀오’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08년 여성들이 희망하는 신랑감의 연봉은 6천만원을 넘는다. 물론 이 역시 ‘희망 사항’일 뿐, 실제로는 그에 훨씬 못 미치는 경우에도 소개를 받고 결혼에 이른다. 그렇긴 해도 일단 기대치가 그렇게 높다는 것은 많은 남성을 주눅 들게 하기에 충분하다. 얼마 전 어느 여대생이 방송에서 키 180cm 이하의 남자들을 ‘루저’라고 폄하해 곤혹을 치렀는데, 만일 ‘연봉 6천만원 이하는 루저!’라고 발언했다면 파장이 훨씬 컸을지 모른다.


남성만의 고민이 아니다. 취직이 너무 어렵고 설령 직장을 얻었다 해도 노동 강도와 스트레스가 엄청난 현실에서 ‘든든한’ 남편감을 잡아 ‘취집’(취직 대신 시집을 간다는 뜻)하고 싶다는 소망이 여성에게 생겨나지만, 이것 역시 만만치 않다. 남성도 배우자의 경제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위에서 인용한 조사에 따르면, 남성이 배우자감에게 기대하는 연봉이 3600만원 정도였다. 신랑과 마찬가지로 신부에게도 대졸 평균 초임을 넘어서는 수준의 연봉이 요구되는 것이다. 고소득 전문직으로 분류되는 의사조차 맞벌이를 원한다. 집안 살림과 육아에 충실하기를 바라는 남편·시어머니와 직장에 나가 자기 일을 하고 싶어하는 아내·며느리의 갈등을 어쩌다 접하면 이제 격세지감이 들 정도다.

불황이 장기화하고 생활비는 치솟는 경제 상황에서 장래에 대한 불안이 가중되어 배우자의 경제력에 대한 기대가 더 커진다. 결혼시장은 노동시장에 연동되면서 진입장벽이 자꾸만 높아진다. 가사노동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되지 않기에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예비 전업주부는 무능한 존재처럼 여겨지기 일쑤다. 미혼과 만혼이 늘어나고 그것은 저출산으로 직결된다. 많은 젊은이들이 나이가 들어서도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에게 얹혀살면서 눈칫밥을 먹어야 한다. 일본에서는 그런 이들을 가리켜 ‘파라사이트(기생충) 싱글’이라는 모욕적인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사랑하기 위해선 화폐 권력에 저항해야”    
 
돈의 덫에 걸린 연애와 결혼을 해방시켜줄 사랑의 가능성은 있는가? 소비와 소유가 아닌 삶의 확장 운동 속에서 남녀가 만날 때 과도한 금전의 압박에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이 생겨난다. 빡빡하게 조여오는 현실에 틈을 내어 사랑이 깃드는 여백을 빚어낸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탐색하고 창조하는 연습, 그것은 고도의 철학을 요구하는 것이면서도 의외로 평범한 일상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고전평론가 고미숙은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에로스>라는 책에서 사랑의 참맛을 경험하려면 화폐 권력에 저항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한 가지 구체적인 방안으로 데이트를 할 때 돈을 쓰지 말고 몸을 쓰는 게 좋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 시대의 연애가 썰렁해진 건 무엇보다 ‘차이’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경제적 수준은 물론 학벌, 가족관계, 거기다 외모까지 비슷한 사람들끼리 만나 어떻게 열정이 폭발하겠는가. …사랑에 빠지기에는 둘 다 몸이 너무 무거운 탓이다. 자가용과 아파트, 그럴듯한 직업과 연봉 등이 척도가 되는 한 몸은 한없이 무거워진다. 동시에 욕망은 잠식되어간다. 화폐야말로 욕망의 흡혈마왕이라는 것, 잊지 마시라. 그러니 이 화폐가 쳐놓은 저지선을 뚫지 않고서야 어찌 사랑의 열정을 누릴 수 있겠는가? …쇼핑은 자가용에 대한 욕망과 포개진다. 쇼(‘××데이’에 맞춰 이뤄지는 이벤트들: 글쓴이 주)-쇼핑-자가용, 이렇게 이어지는 회로를 차단하는 것도 화폐 권력과의 대결이라는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틈나는 대로 걸어야 한다. 아니면 자전거를 타거나. 사랑이란 무엇보다 생명의 활기로 표현된다.”

여러 가지 악조건 속에서도 어쨌든 삶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면, 그것을 조금이라도 견딜 만한 것으로 다지고 살 만한 가치가 있도록 격상시키는 것은 우리의 책무다. 힘겨운 인생의 여정에 서로 부축하고 격려하면서 지속 가능한 경로를 함께 더듬어가는 동반자가 필요하다. 연인이나 부부가 그러한 동지로 맺어지려면 우선 고비용으로 기우는 일상의 습관과 사회적 통념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들에게 최적의 삶이 무엇인지를 냉정하게 정의해야 한다. 더 나아가 단둘만의 관계를 넘어 세상의 변화를 향한 꿈을 공유하는 공동체적 연대로 나아가야 한다. 연애와 결혼이 감정 노동이라는 또 하나의 버거운 짐이 되지 않고 미지의 세계를 다채롭게 상상하는 놀이가 될 수 있도록.

얼마 전 200억원대의 자산을 가진 40대 미혼 여성이 “연하의 배우자를 찾습니다”라고 신랑감을 공개적으로 모집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수많은 남성이 응모했지만 아직 찾지 못했다고 한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그것만으로 얻을 수 없는 것 가운데 하나가 사랑임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결혼이 이기심의 동맹이 될 때 그 가정은 소유욕을 확대재생산한다. 배우자를 그리고 자기 자신을 돈 버는 기계로 대상화하고, 자녀들은 부모를 현금인출기로 수단화한다. 그런 가정에서 자란 젊은이들의 연애는 돈을 매개로 좌충우돌한다.


배우자 공모한 수백억 자산가, 지금은?

경제적 자립이 어려워 성인기로 진입하지 못하는 청춘에게 낭만적 사랑은 무엇인가? 입시를 위한 선행학습에는 열심이었으나 자신이 꿈꾸는 인생의 선행 모델이 없어 암중모색하는 그들에게 애인은 누구인가? 생애의 고달픔을 동병상련하며 함께 어른으로 성숙해가는 파트너가 아닐까. 그 관계 속에는 심오한 삶의 시나리오들이 씨앗처럼 숨어 있다. 사랑은, 자기 안에 그리고 상대방에게 감춰져 있는 보석을 찾아가는 여행이다. 고귀한 인격과 존재의 신비를 깨닫고 나누는 축제다. 정신분석학자 라캉은 말한다. 사랑은 가질 수 없는 것을 주는 것이라고.

김찬호 성공회대 교양학부 초빙교수 - 출처 [한겨레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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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클롱
가끔 생각난다.
다소 거친 공기, 옥스포드 스트리트의 화려한 매장, 다인종이 북적이는 거리, 빨간색의 더블 데커, 샌드위치가 신선했던 E.A.T., 겉은 삭막해도 속은 문화예술로 꽉 찬 사우스뱅크센터(때때로 로비에서 펼쳐지는 무료 공연도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 석양이 지던 시간의 로맨틱한 런던아이,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까지..

꽉 짜인 일상 속에서 이런 여유와 신선하고 의외적인 마주침이 그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1. 변덕스러운 런던 날씨에서도 좀처럼 보기 힘든 쌍 무지개. 갑작스런 소나기가 그친 후의 하늘의 깜짝 선물. 노팅힐 부근 스타벅스에서 나오면서 봤던..



2. 템즈강변에 위치한 런던아이 탑승로. 마치 배를 타러 가는 것 같지만, 런던아이도 마감한 늦은 밤에 아름다움에 홀려 사진을 찍고 나왔다.



3. 아기자기한 코벤트 가든 마켓. 이 근처에 한국인이 하는 미용실이 있다는 얘길 들었지만 찾지는 못했다. 코벤트 가든의 중심부 지하에는 레스토랑이 있고 역시나 그곳에선 라이브 공연이 계속된다. 지하철 역에서 코벤트 가든으로 직진하는 길은 굉장히 짧지만, 주말마다 재미난 퍼포먼스가 많아 그 길에 한참 머물게 된다.



4. 코벤트 가든 바로 옆 혹은 바로 앞에 위치한 로얄 오페라 하우스는 새로운 세계다. 우리나라 예술의 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과는 사뭇 다르게, 로비가 그다지 크지 않은 그곳엔 전설적인 지휘자들의 이름이 눈에 띈다. 로얄 오페라 하우스의 음악감독들의 이름이 한 명씩 적혀 있다. 그 유명한 게오르그 솔티 경. 1984년 바로 이곳에서 열린 '장미의 기사' 지휘로, 'Sir(경)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5. 사우스뱅크센터에서 5월 22일에 봤던 런던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연주회. 명불허전.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의 선율을 한 공간에서 듣다니, 한국에서는 좀처럼 하지 않는 행동을 했다. 소리를 조율하는 동안 남긴 한 장의 사진. 좋아하는 슈만의 피아노협주곡 a단조를 들으러 갔던. 원래 나오려던 피아니스트의 손가락 부상으로, 대타 연주자가 나왔지만 갑작스러운 연주회였던 탓인지 연습이 충분치 않았던것이 못내 아쉬웠던. 런던필의 수석지휘자인 러시아 출신의 블라디미르 유로프스키(Vladimir Jurowski)의 가죽바지와 헝클어진 곱슬머리도 연주만큼이나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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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클롱
누군가에겐 진중권 교수의 큰 누님으로 더 잘 알려진,
음악 칼럼니스트 진회숙 선생님의 신간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
혹자는 '혹할 만한 제목'이라고 했지만 말랑 말랑한 미술 관련 서적을 어느 정도 읽어본 사람들에겐
제목은 지루한 감을 감출 수가 없다. 하지만 진 선생님의 책의 속내를 들여다 보면 그런 의혹은 말끔히 사라진다. 음악과 미술이 감칠맛나게 버무려져 이런 자료를 어디서 다 구하셨을가 싶은 맘이 들 정도.

한참 클래식을 즐겨듣던 고등학교 시절, 처음 알게 된 진 선생님을 직접 만나뵈니 생각보다 자그마하시고 여성스러우면서도 소탈한 분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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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칼럼니스트 진회숙 "음악과 미술 소통 코드로 새 의미 찾아"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 16세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와 18세기를 살던 ‘모차르트’라니, 처음엔 어쩐지 진부하다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좀처럼 보기 힘든, 음악과 미술의 만남을 시도했다는 반가움에 책장을 한 장 넘겨본다.

게다가 <클래식 오딧세이>에서 음악을 매개로 미술, 영화, 문학이란 장르를 넘나들었던 ‘진회숙’ 씨의 신간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수없이 반복해서 보고 들었던 역사 속 명화와 음악이 나올 거란 예상은 첫 장부터 빗나갔다.

22개의 테마로 쓰여진 글 속엔 현대작가와 작곡가들의 작품이 상당수를 차지했다. 모차르트부터 현대음악가 존 케이지까지, 15세기의 보티첼리부터 미디어 아트의 백남준까지 아우르면서도 현대예술에 조금 더 무게를 실었다.

그 덕에 책은 갓 잡아올린 바다 물고기처럼 신선함과 생명력으로 퍼덕이고 있었다.

“ 현대음악과 미술로 이야기를 풀어가는게 오히려 편해요. 미술이나 음악, 문학의 사조가 서로 영향을 받고 발생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미술에서 처음 생겨났던 미니멀리즘도 음악으로 옮겨갔고 인상주의 미술과 그 시대의 음악도 영향을 주고 받았죠.” 카페에서 마주앉은 그녀는 ‘의도이기보다는 필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어쨌든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는 수많은 예술서 사이에서 경쟁력을 확보했다. 그리고 또 한번 책장 속에서 미술과 음악이 씨줄과 날줄을 이루며 그녀가 찾아낸 ‘의미 고리’를 통해 직조 되면서 독서의 흥미를 돋운다.

두 번째 테마, ‘패러디, 그 유쾌한 반전’에는 이런 음악과 미술이 엮였다. 풍선처럼 부풀어오른 스타일의 그림으로 명작 패러디를 했던 것으로 유명한 화가 페르난도 보테로(콜롬비아)의 살찌고 귀여운 ‘모나리자’는 미국의 저명한 작곡가이자 음악해설가인 피터 쉬클리가 P.D.Q바흐라는 짝퉁 인물을 내세워 패러디한 모차르트, 차이코프스키, 슈베르트의 음악과 묶였다. 작품에 대한 이해와 느낌에 더해 재미난 에피소드를 녹여낸 이야기는 ‘고고하고 예스러운’ 클래식을 바로 지금 내 옆 자리에 끌어다 놓은 듯 친근하다.

“연결고리를 찾는다는 게 쉽지는 않았어요. 글 쓰는 사람이라면 ‘이런 그림이 있고 이런 음악이 있다’라는 나열이 아니라, 그 안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이전에 <클래식 오딧세이>나 <영화로 만나는 클래식>을 쓸 때도 같은 생각이었어요.”

미술에 대해 잘 알지 못해 자료조사를 많이 했다는 그녀에겐 그 동안의 저서는 ‘예술 장르 넘나들기’의 실험이자 ‘공부의 흔적’인 듯했다. 사실,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는 그녀가 편집장을 맡고 있는 서울시향의 월간지 ‘SPO’에 지난 2년간 연재했던 글을 정리, 확장 본이라고 할 수 있다.

1/3은 연재에서, 2/3는 지난 8월 한 달간 ‘폐인’이 되다시피 하며 새로 써낸 글들이다.

연 재한 내용 중에도 부족하다 싶은 내용은 새로운 작품과 새로운 의미의 고리를 적용했다. 연재에서 미니멀리즘 미술과 바흐로 이뤄진 커플이 책 속에선 미니멀리즘 음악과 미술로 대체된 것이 그 예다. 그 와중에는 의미 고리를 찾지 못해 놓친 작품들도 많았다고 한다.

“클림트(‘키스’란 작품으로 잘 알려진, 오스트리아 화가)의 ‘베토벤 프리즈’란 작품도 있고 힌데미트(독일의 현대작곡가)의 ‘화가 마티스’란 작품, 뵈클린이란 화가의 ‘죽음의 섬’에서 모티프를 얻어 같은 이름의 교향시를 작곡한 라흐마니노프도 있지만 이번에는 쓰지 못했죠. 앞으로 치열한 고민을 하면서 찾아내는 게 내 숙제인 거 같아요.”

어릴 때 노래에 소질이 있었던 KBS 어린이 합창단, 정신여고 합창단을 거쳐 성악과에 진학했다.

그러나 유신 정권시대 학생운동을 하며 감옥에 갇히고폭행을 당하는 선후배를 보면서 홀로 노래를 부를 수 없던 탓에 진로를 변경했다. 이 같은 사회 분위기 속에서 서양음악이 아닌, 우리 음악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대학원에서 국악이론을 공부했다.

그리고 당시, 문화와 다큐 프로그램이 강세였던 MBC방송국 모니터 요원으로 2년간 활동하면서 ‘평론’이란 글에 눈을 뜨게 됐다. “마침 월간 객석에 ‘예술평론상’이 생겼어요. 그때 수상을 하면서 음악평론가로 등단했지요. 하지만 음악평론은 10년쯤 하고 그만뒀어요. 오히려 지금은 음악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칼럼과 강의를 주로 하고 있지요.”

남들이 느끼지 못한 것을 가장 설득력 있는 언어로 풀어내는 것이 음악적 감수성에 우선한다는 그녀는 벌써 20년 동안 클래식과 국악에 관한 글을 써왔다.

현재는 세종아카데미나 서울시향에서 진행하는 ‘콘서트 미리보기’, CEO를 위한 특강 등의 강의에도 힘을 쏟고 있다. ‘클래식의 위기’라는 일설에도 불구하고 최근 2,3년 사이, 클래식에 대한 수요가 늘어가고 있다고 한다.

“ 클래식이 대입시험과 맞물리면서 선입견이 많아진 거 같아요. 기득권을 유지하거나 신분상승을 위한 수단으로 인식이 된 거죠. 정말 음악이 좋아서 음대에 온 학생들보다 오히려 이런 분위기로 진로를 택한 학생들이 적지 않다는데 저 역시 편견이 있을 정도니. 하지만 클래식이란 음악은 자본주의 시대에 취약할 수밖에 없지만 에술성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트렌드는 있을 지언 정, 영원히 사장되는 일은 없을 거라고 봐요.”

진회숙 씨는 잘 알려진 대로, ‘작곡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그라베마이어상’을 수상했던 진은숙과 미학자이자 인터넷 논객인 진중권의 큰 누나다.

예 술계에 걸출한 세 남매를 길러냈으니 그 가정은 부유하거나 남다른 교육방식이 있을 거라는 예상을 하기 마련이지만 그녀는 “전혀 아니다”라고 말한다. 개척교회 목사인 아버지와 동네 피아노 교실에서 피아노를 가르치셨던 어머니 사이에서 나온 2남 2녀 중 장녀였던 그녀는 대입 2달 전에 받은 레슨이 전부였다.

작곡가 진은숙 씨는 대입을 위해 필수라는 교수 레슨 한번 받아본 적이 없었다고.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강마에는 클래식 음악을 ‘귀족음악’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진회숙은 이런 선입견을 무너뜨리고 싶은 듯했다.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도 그 연장선에 있다.

“좋은 오디오에서 음악을 듣고, 예술 작품을 많이 아는 것이 클래식에 접근하는 최상의 방법일까 하는 의문이 들어요. 10년을 들어도 제자리인 사람이 있고 처음 들어도 빠르게 가까워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음악을 어디에서 들어야 하고, 이것이 어떤 곡인지 맞추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나름의 시각을 가지고 즐길 수 있는 게 중요하지, 그런 건 예술을 대하는 태도는 아니라고 봐요.”

음악을 연주하는 것만은 못해도 음악을 들어야 먹고 살 수 있다는 점에서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그녀는, 내년에도 한 걸음 클래식에 다가갈 수 있는 두 권의 책을 펴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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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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